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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천국

퇴페적이지만, 천박하지 않은 <움>

by 김핸디 2012. 2. 28.



  에바 그린은 왠지 모르게 퇴폐적이다. 하지만 천박하지는 않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다. 이 영화 <움>도 마찬가지였다. 무척 음울하고 어딘가 모르게 퇴폐적이지만 천박하지 않았다.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에바 그린이라는 여배우가 가지고 있는 아우라 때문이었고, 두번째는 위험한 소재를 아슬아슬하게 그러나 영리하게 다루는 감독의 연출력 때문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유전자 복제아이 낳은 여자. 이런 소재는 누가 다루냐에 따라 한 없이 지저분하고 거북할 수 있는 소재다. 하지만 감독은 영리했다. 라스트 씬에서 한 차례 폭발해버리긴 하지만, 그 전까지는 영화 내내 긴장과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똑똑한 감독들은 늘 그렇다. 다 보여주지 않고 끊임없이 상상하게 한다. 보여주는것이 한정적일수록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몰입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사람의 숨소리가 이토록이나 에로틱할 수 있는거구나 하는 거였다. 영화 속에서 소녀는 소년의 숨소리를 바라보고, 소녀 스스로의 숨소리를 듣고, 성인이 된 그녀는 다시 그와 숨소리를 공유한다. 그저 들어쉬고 내쉴뿐이지만, 나는 무언가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거칠거나 흥분된 숨소리가 아니었다. 그냥 숨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그걸 민감하게 알아채렸고 그것이 감독의 의도라고 생각했다.

  에바 그린이 들려준 메시지는 철학적이었지만 동시에 미학적이었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 하지만 떠나간 이에게 '안녕이라 말하기' 를 할 수 있는것도 또한 사랑이다. 억지로 내곁에 붙들어둔다고 해서 그걸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다. 사랑은 그 사람의 육체뿐만이 아니라, 정신뿐만이 아니라, 오롯이 한 존재로서 나와 1:1로 마주할때만 완성된다. 그러니 1이 되지 않은 그 사람의 어떠한 것인들 붙들고 있어봤자 서로만이 괴로워질 뿐이다.

  <몽상가들>로 처음 만나고, <크랙>에서 반해버린 여배우 에바 그린은 이 영화 <움> 을 통해서 한층 나를 더 매료시켰다. 누가 나에게 '네가 좋아하는 여배우는 누구야?' 라고 묻는다면, 단연코 이 깊고 뭔가를 꿰뚫어보는듯한 눈빛을 지닌 에바 그린이라고 말하리라. 흑흑, 사랑해요, 에바 그린! 저는 이제부터 기꺼이 당신의 노예관객이 되겠어요.